2008년 12월 28일
키보드를 내려치는 이야기
보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짙은 푸른빛이 하늘에 깔려 있었다. 땅에 달라붙은 인간에게 하늘은 너무도 높다. 그 높다는 감각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손을 뻗으면 건드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손을 뻗어도 닫지 않는 하늘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연록은 환기 팬들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블루핑 서플라이*의 옥상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보았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낙하감을 내포한 음악과 마약의 일종인 TDP가 들어간 모노스크라이브를 피우며 얻은 신감각이 그의 마음을 하늘에 못박히게 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슬픔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저 매정하리만치 푸른 하늘을 보며 그는 애잔한 향수를 느꼈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옛이야기가 하늘에 취해 푸르게 물들어가는 뇌 속에서 본모습을 갖춘다. 평범한 나뭇꾼에게 날개옷을 빼앗긴 선녀는 다시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나무꾼의 아이를 셋이나 낳아줘야 했다. 그녀가 과연 나뭇꾼을 사랑했을지는 별개로 치고 남겨진 자식들과의 유대조차 져버리고 향한 하늘의 의미는 그녀에게 어떤 것일까. 연록은 하늘에서 태어났으나 날개가 상해 지상으로 추락한 천사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흩뿌렸다. 넓은 창공이 그의 웃음조차 가져가버린 것인지 웃음은 목에서 걸려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처연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지으며 회색 일색인 서플라이의 옥상에 쓰러졌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연록이 눈을 뜬 것은 주머니 속의 미크로본*이 일으키는 진동 때문이었다. 벌써 날은 저물어 싸늘한 한기가 그의 전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연록은 머리를 붕붕 흔들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미크로본의 액정을 확인했다. 액정에는 누군가의 이름인 것처럼 느껴지는 세 글자가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연록은 그게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아 연락을 받을 수가 없었다. 조금 뒤면 연록의 뇌가 살아온 시간을 스캔하여 주마등이란 시스템을 이용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줄 터였다. 삶의 테이프를 빠르게 돌려서 현재에 이른 감각, 이 순간만큼은 그는 태어나서부터의 모든 기억을 어제 일처럼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TDP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는 하루하루가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덧칠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활력과 약간은 지친 마음가짐으로 그는 미크로본의 측면 버튼을 눌렀다.
"응. 아화. 무슨 일이야?"
통화를 시도한 것은 그의 친동생이었다. 주변에선 다들 아화란 애칭으로 부르지만 본래 이름은 아화인, 아주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이다. 총 인원이 다섯 뿐인 아(娥)씨 집안의 막내인 아화는 형에게 매우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형...... 또 약 한거 다 알고 있어. 거짓말 할 생각 마."
들켰다는 생각에 헛웃음보다는 차가운 말씨가 반사적으로 연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의 친동생은 그의 모든 비밀을 추리해낸 것 같았다. 언제나 형을 생각하는 마음에 따뜻한 말씨를 구사하던 동생이 이런 차가운 어조로 나오자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연록은 서플라이 옥상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도중 코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TDP? 시험차원에서 한 번 흠입해 본 거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이건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스무살에 치매에 걸리면 참 볼만 하겠군. 적어도 동생 수발들게 할 짓은 그만두는 게 좋아.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동생이 하는 말은 언제나 그랬듯이 신랄했지만 이번엔 그 안에 분명한 악의가 담겨 있었다. 사랑스러운 동생, 아화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약에 취했다가 조금 전 정상으로 돌아온 연록의 뇌는 아직 상대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는 어려운 일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뭐, 얼마나 참았다고. 게다가 너도 알잖아. 난 같은 종류는 절대 두 번 이상 흠입 안 하는 거."
동생의 화를 풀어 주기 위해 연록은 애써 밝은 말투를 연기했다. 사실 그의 기분은 상당히 안 좋았지만 동생에겐 어째서인지 강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잘못한 일로 강하게 나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화학식으로 만들어진 악마가 얇은 귀를 통해 속삭이고 있었다. 연록에게도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대신에 지키고 있는 선이란 것이 있었다. 물론 도덕적인 면보다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적어도 같은 마약을 두 번 이상 흠입하진 않았다.
"그렇게 형은 한 달 동안 마약에 취해 보낸 시간이 240시간에 달한다는 걸 알아?"
하지만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연록은 가슴 한 구석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 달에 십 일 가량을 마약에 취해 보낸 셈이었다. 물론 마약의 종류는 많고, 모든 것을 다 흠입해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위험하단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불과 한 달 전, 정상이던 시절의 자신이 원래 모습을 되찾으라고 속삭였다.
"알지. 하지만 이건 간단한 테스트라고. 가리가 추천해 준 코스대로 해 보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악마는 그의 귀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유치한 책임전가가 연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연록은 말을 끝맺고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몹시 화가 난 동생에게 이런 반응을 보여줘선 안 되는 거였다. 그는 자신을 수렁 속에 밀어넣는 자신의 팔을 느끼며 깊은 좌절을 맛봤다.
"나 지금 가리 형이랑 같이 있어. 피떡을 만들어 놓으니까 말을 듣던데? 형도 조심하는 게 좋아. 아니, 지금 끝을 보자."
# by | 2008/12/28 00:16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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